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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당뇨병학회 E- Newsletter VOL 009


의사의 병원 밖 진로에 대한 소개: 의료 AI 기업

루닛 안창호

저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에서 임상조교수로 근무하다 2023년에 의료 AI 기업인 루닛으로 이직하였습니다. 임상 교수로서의 경험도 충분히 여물지 못했고 새로운 직장에서의 경험도 아직 부족합니다만, 뉴스레터 편집자이신 동료였던 선생님의 요청으로 부족하나마 제 경험을 소개하고자 글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루닛은 AI를 이용하여 인류의 질병 극복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회사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하여, 인류의 여러 질병 중에서도 ‘암’을 정복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암을 정복하기 위해서 암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과 암을 더 잘 이해하여 ‘최선’의 치료법을 제시하는 두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최선’의 치료법을 제시하기 위해 조직병리 이미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바이오마커를 개발하는 oncology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2013년에 창업했고, 2022년에 코스닥에 상장되었습니다. 현재 직원은 약 300명 정도이고 2023년 매출은 251억원으로 2022년보다 80% 증가했으나 영업손실도 422억원으로 아직은 더 성장하고 발전하여 영속 가능한 회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회사에서 저는 의학부에 속해 있는데, 의학부에는 현재 clinical research 팀, biomedical research 팀, data management 팀, medical product management 팀이 있습니다. 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저희 부서에서는, 만들어진 AI 제품을 이용한 다양한 임상 연구의 진행, 새로운 AI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의 수집 및 가공, AI 제품의 유지와 보수, 그리고 AI 모델의 1차적인 분석 결과를 사람이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로 2차적으로 가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AI가 새로운 기술인 만큼 AI 기업도 비교적 신생 기업입니다. 의사의 병원 밖 진로 중, 조금 더 전통적인 제약 산업에서 의사의 역할은 비교적 정형화된 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AI 기업에서 의사의 역할은 아직 정해진 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사로서 가지고 있는 의료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종류의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AI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일부터 AI 제품을 가지고 어떻게 매출을 낼 것인지 고민하는 비즈니스의 영역, 제품을 어떻게 허가 받고, 임상 근거를 쌓을지 고민하는 임상 연구/허가의 영역까지 다양합니다. 다만, 회사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일을 저보다 더 높은 전문성을 가진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일하고 소통하면서 그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또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제 가치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이 현재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큰 즐거움의 하나입니다.

주변의 지인이나 후배들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많이 하는 질문 중에, ‘영상이나 병리 검사를 판독하거나 고치는 단순 작업을 주로 하는 것은 아닌지’, ‘실제 AI 개발과 같은 프로그래밍은 얼마나 할 줄 알아야 하는지’가 있습니다. 판독과 같이 직접 의료 데이터를 가공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의사의 전문성이 회사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경우는 ‘제품 기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는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결국 어떠한 제품(product)을 판매하게 됩니다. 의료 산업의 소비자인 환자 또는 의사(보험회사, 정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걸 우리 제품을 통해서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지 답을 찾는 것이 제품 기획의 영역입니다. 이 지점에서 의사는 실제 의료 현장의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직군과 비교하여 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품 기획은 단지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디어를 회사에서 가용한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여 구현해내는 일 까지가 제품 기획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AI 개발에 대한 이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이해, 나아가서는 제품 허가에 관한 이해, 비즈니스나 회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까지 있어야 실제로 제품을 구현하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앞서 언급한 질문 중 ‘실제 프로그래밍은 얼마나 할 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제가 회사에서 직접 코딩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는 하였고 AI 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의료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AI 모델의 성능이 불만족스러운 이유가, 의료 데이터가 가지는 어떠한 고유 특성 때문인지, 그리고 그 특성을 고려하면 데이터를 수정하는 것, 데이터를 추가하는 것, 트레이닝 방법을 바꾸는 것 등 다양한 방안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의사출신 자문가에 머물지 않고, 의료 AI 분야에서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과연 AI라는 기술이 의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감히 예측하진 못하겠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진정한 가능성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에서도 기술의 최전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Foundation model, zero-shot learning, vision language model 등의 기술을 저희 제품에 접목하기 위해 현재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특히 루닛에서 누릴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이런 경험들 중에 ‘이런 것까지 가능해’라고 놀라는 경우가 있는 반면에, 현재 기술의 뚜렷한 한계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 제품에서도 무조건 최신 AI 기법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 장점 때문에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상당히 전통적인 AI architecture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AI 리서치 팀과 하는 가장 큰 고민입니다.

회사에서의 일은 병원에서 보다는 덜 정형화되어 있고,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이러한 면이 다이나믹 하다는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 스스로는 적응하는 단계를 넘어서 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비록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의 최전선에 있지는 못하지만, 단순히 이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 경험이 독자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